울로 코엘료의「승자는 혼자다」가 국내의 한 포털 사이트에서 연재되고 있는 중이다. 나는 별 관심이 없지만 인기가 있는 모양이다. 나는「오 자히르」를 마지막으로 그의 소설을 읽지 않는다. '오 마이갓' 이라는 단말마가 마지막이었다. 책은 파울로 코엘료를 좋아한다는 누구에겐가 줘버렸다.

나의 생각과는 달리 그의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에 관해 누군가와 입씨름할 가치를 느끼지 못한다. 조금 미묘하긴 하지만 어쨌든 '취향' 의 문제이고, 그런 의미에서 나와 다른 취향을 가진 사람이 존재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단순한 취향의 영역을 넘어선 정치적 영역의 문제라고 할지라도('취향' 이라는 것은 개인의 세계관과 연관되어 있고 '정치' 란 충돌하는 세계관 사이의 권력다툼이므로), 이깟 일에 목숨 걸고 싸워 이긴다고 해서 세계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혹 나와 생각이 다른 모든 이들을 설득하는데 성공해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은 생각(파울로 코엘료=쪼다)을 하게 되었다고 생각해 보자. 그만큼 끔찍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몇 년 전의 일이다. 우연한 일을 계기로 나와 동갑인 한 여자를 알게 되었다. 그녀와 나는 초면에 서로 호감을 갖고 대화를 시작했다. 그녀가 왜 내게 호감을 가졌는지는 모르지만 내가 그녀에게 호감을 느낀 이유는 그녀가 '책 읽기를 좋아한다' 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녀의 말에 호응하여 '나도 책 읽기를 좋아한다' 고 했고 그녀는 눈을 반짝이며 '나는 파울로 코엘료라는 작가를 가장 좋아한다' 고 했다.

미약한 실망의 전류가 대뇌피질을 잠시 타고 흘렀지만 나는 내색하지 않고 '나도 얼마 전에 파울로 코엘료의 신작을 읽어보았는데, 개인적으로는 조금 실망스러웠다' 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녀는 내게 '왜 파울로 코엘료를 싫어하느냐(나는 싫어한다고 한 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고 물었다. 나는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은 내가 소설에서 보고 싶어하는 것들을 보여주지 못한다. 이야기꾼인 소설가에겐 가장 치명적인 결함이 될 수 있는 것으로 무엇보다 재미가 없다는 의미다' 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그녀가 갑자기 화를 내기 시작했다! 여자는 초면의 내게 말 할 틈도 주지 않고 격한 말들을 쏟아냈다. 자신이 예전에 사귀던 남자가 나와 같은 부류였는데 끊임없이 잘난 척을 하며 자신을 무시했었다는 것, 그와 결국 좋지 않게 헤어졌는데 자신은 그런 남자를 만나기 전까지 책을 많이 읽고 아는 것이 많은 사람들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더 나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그렇지 않았다는 것.


이 후 그녀는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 며 구구절절한 화해의 메시지를 보내왔지만 나는 무대응으로 일관했고, 그런 내게 그녀는 이메일로 욕설을 써보내기 시작했다. 메일이 하루에도 서너통씩은 왔는데 패턴은 이랬다. '미안해→ 이 썅년아→ 미안해→이 썅년아'.  화는 나지 않았다. 다만 그녀의 병적인 심리상태가 진심으로 걱정되었을 뿐.

앞에서 하던 얘기를 마저 해야겠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나와 다른 무언가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 무언가가 내가 끔찍히 싫어하는 것이라 할 지라도, 내가 누군가와 그에 관해 말을 섞지 않는 가장 단순한 이유는 바로 '그 누군가에게 관심이 없기 때문' 이다. 관심도 없는 이에게 나의 에너지를 낭피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에게 그 자신이 탈진할 정도로 관심과 사랑을 주었던 그녀에게 이 자리를 빌어 진심으로 고마웠단 말을 전하고 싶다. '왜 파울로 코엘료를 좋아해야만 하는가' 에 관한 원고지 10매 분량의 메일은 잊지 못할 추억이 되어 있다. 오늘 '파울로 코엘료' 라는 이름과 함께 그녀를 떠올린 것을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