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만. 노무현 죽이기
posted libris 2008. 1. 12. 20:29



 노무현 죽이기」(강준만, 인물과 사상사, 2003)



이 책은 노무현 대통령이 언론으로부터 한창 몰매를 맞고 있을 무렵인 2003년에 출간되었다. 저자인 강준만에 의하면, 21세기 대한민국의 '범국민적 취미생활' 로서의 노무현 죽이기엔 세 가지 종류가 있는데 첫째, 악의에 의한 것으로서 조중동의 악랄한 써조지기가 이에 해당하고 둘째, 부화뇌동에 의한 것으로서 이들 찌라시에 조종당하는 일반인(?)들의 그것이 이에 해당하며 셋째, 편협에 의한 것으로서 이는 '개혁진보진영' 에 의한 노무현 죽이기를 의미한다.

조선일보를 필두로 한 수구언론의 노무현 죽이기는 사실 그들의 존재에서 오는 당연한 몸짓이라 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스스로의 정체성을 극명화할수록 몰락의 속도는 가속화될 것이라 생각한다. 오늘날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 는 21세기 하이 코메디의 진수가 되어있지 않은가? 그것을 문자 그대로 체화하는 자는 '뇌용량이 딸리거나 혹은 양심을 밥 말아먹었거나' 둘 중에 하나일 확률이 높다.

그리하여 내가 생각하기에 문제는 소위 '아군 영역' 에서의 노무현 죽이기인데, 이에 관해선 결론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현재 정치 스펙트럼 상의 내 실존적 위치에 따라 전혀 다른 결론이 나올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현재 진보 진영과 중도보수 진영(이하 보수 진영) 간의 이해가 첨예하고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어느 한 곳에 잘못 발을 담궜다가는 '바보' 혹은 '변절자' 의 오명을 쓰기가 십상이기 때문이다.

노무현의 지지자였던(본질적으로는 민주당 지지자인 것 같지만) 강준만은 수구 진영 만큼이나, 혹은 그 이상 진보 진영에 대해 적대적인 것 같다. 사실 보수 진영의 진정한 적은 '수구' 가 아니라 '진보' 아니겠는가? 강준만의 말을 들어보자.

일부 진보 세력의 비판은 늘 숭고하지만 그들은 국가 경영엔 별 관심이 없다. 그들은 총체적으로 사고하는 게 아니라 파편적으로 사고한다. 어떤 '파편' 에 대해 옳으냐 그르냐 하는 교과서적인 답을 얻어낸 뒤 그 답에 어긋나는 것에 대해선 목숨 걸고 싸울 태세로 맹렬히 비난한다. 그래서 수구 세력의 '정권흔들기' 를 막아내는 데에 도움이 되기는 커녕 오히려 수구 세력의 공세를 키워주는 데에 일조하기도 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진보 진영의 생각은 좀 다른 것 같다. 진보 진영의 대표 논객(논란의 여지가 있겠지만)인 악동 진중권의 서평을 들어보자.

「노무현 죽이기」라는 책이 나왔다. 누가 노무현을 죽이는가. 저자는 여러 세력을 지목하면서 정작 중요한 세력을 빠뜨렸다. 국민경선으로 뽑은 제 당의 대선후보를 열심히 흔들어대던 분들, 대통령의 인사에 반발하여 호남홀대론을 퍼뜨리며 지역감정을 선동하던 분들, 기득권을 위협받자 고향에 내려가 장외집회를 열며 열심히 세를 과시하던 지역주의의 화신들, 모두 민주당 내부에 있다. 지금도 대통령에 대한 가장 험한 소리는 민주당에서 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정작 '노무현 죽이기' 의 선봉에 선 이분들을 너그럽게 끌어안는다. 지금 뭐 하자는 건가?

-진중권,「빨간 바이러스」중에서

 

누구의 손을 들어줘야 할지 모르겠다. 둘 다의 말에 일리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같은 진영 내라 할 지라도 이들과는 다른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기 때문에 이 둘의 생각만을 가지고 보수와 진보 진영의 생각을 뭉뚱거리는 데는 어폐가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남탓' 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누구나 같은데(이제껏 자성의 목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다), 민주당이 지역당으로 전락해 버린 지금에도 민주노동당의 지지율이 여전히 한 자리 수인 것을 보면 유권자 대부분(콘크리트 제외)의 생각은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