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명 높은 아에로플로트. 많은 사람들이 아에로플로트를 두려워 하면서도(?) 이용하는 것은 역시 가격 때문. 그리고 나도 그 때문에 결국(?) 아에로플로트를 타게 됐다. 인천-프랑크푸르트/프라하-인천 구간을 89만 원 여에 발권했으니 항공료에서만 약 100만 원(2인, 평균가 대비)을 절약한 셈. 

 

출국 날짜가 다가올수록 숨이 잘 안쉬어 지고 밥이 잘 안넘어 가는 것은 비행에 대한 공포 때문. 원래부터 그랬던 건 아니고, 태국 여행 이후부터 그렇다. 제주항공의 3-3형 비행기는 숨이 멎을 만큼 좁았다. 나는 상당히 왜소한 체격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대로 질식해서 기절해버릴 것만 같았던 공중에서의 여섯 시간. 그 때의 트라우마 이후 3-3형은 웬만하면 타지 않으려 하는데 아에로플로트의 기내맵을 확인해 보니 모스크바-유럽 구간이 3-3형인 거다. 드높은 악명에 3-3의 악몽까지 더해지니 잠이 안올 밖에.

 

그러나 아에로플로트의 3-3형 항공기는 오오오 구우우웃 이었다! 덩치 큰 유럽인들이 주로 이용하는 구간이어서일까? 좌석 간 간격이 상당히 넓었다. 앉아서 다리를 쭉 뻗고 요가를 할 수 있을 정도(내 다리가 좀 짧긴 하지만). 앞뒤 뿐 아니라 옆 간격도 넉넉해서 서너 시간의 비행에 불편이 전혀 없었다. (*편명은 SU2304, SU2013이었으니 참고하시길)

 

 

 

 

아에로플로트의 악명이 높은 건 뭐니뭐니해도 잦은 지연과 연착 때문. 내가 탔던 그 날도 한 시간 여씩 늦었다. 그러나 인천-프랑크푸르트의 경우 대기 시간이 두 시간 이상이었고 프라하-인천의 경우 네 시간 이상이었기 때문에 환승에 지장은 없었다. 그러나 아에로플로트의 지연과 연착은 매우 빈번하고 장시간의 연착도 흔하다고 하니 대기 시간은 꼭 두 시간 이상인 게 좋겠다. 동유럽 구간의 경우 도착 터미널과 출발 터미널이 달라 이동하는데 시간이 좀 걸리니 좀 더 여유있는 게 좋겠다. 그러나 언제나 뜻하지 않은 일이 생기게 마련. 그래도 내일은 또 내일의 비행기가 뜨니 결코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고 어떤 러시아 아저씨가.

 

잦은 짐분실도 아에로플로트의 악명에 일조하는 원인 중 하나. 지연-연착과 궤를 같이 하는 문제이겠지. 무튼 그래서, 짐을 쌀 때 꼭 필요한 옷가지나 귀중품같은 것들은 다 배낭에 넣어 들고 탔다. 캐리어에는 없어도 되는 그러나 있어야 하는(?) 물건들을 넣어 부쳤는데 다행히 다 잘 왔다. 간혹 가방이 털리는 경우도 있다고 하는데 직접 목격하지는 못했다. 나는 캐리어를 더스트백에 넣어 부치는데 러시아인들을 보니 테잎으로 칭칭 감았더라. 여튼, 어느 항공사를 이용하든지 간에 부치는 짐에 귀중품을 넣지 않는 건 상식 중에서도 기본.

 

내가 보기에, 아에로플로트의 가장 큰 단점은 시끄럽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러시아 국적기다 보니 러시아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는데, 이 러시아 아줌마들 목소리가... 그날 어떤 러시아인이 타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무튼 이 날 러시아 아줌마들의 목소리는 무지막지하게 컸다. 더 심각한 건 비행 시간 내내 지지치도 않는다는 것. 그러나 러시아인들과 같이 이용한다는 것은 장점이 되기도 한다. 이 러시아 사람들, 꽤 순박한 것 같다. 한국인에게 호의적이기도 하고. 아 그리고 러시아 사람들, 비행기가 착륙할 때 정말 박수치더라. 나도 옆자리 아저씨랑 브라보~ 브라보~ 하면서 같이 박수쳤다. -_-

 

그리고 이건 확실하진 않은데, 아무래도 컵을 재사용하는 것 같다. 새 종이컵에 물을 따라주는데, 컵 안쪽에 오렌지쥬스나 커피의 흔적이 있었다. 뭐 재사용 컵에 물 한번 먹는다고 죽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럼 안되쥐.

 

물 얘기 하다 보니 생각난 아에로플로트의 승무원 아주머니들. 이 분들, 물을 잘 가져다 주지 않느니 알아서들 가져다 먹어야 한다. 기내식도 인기있는 거 떨어지면 미안한 기색도 없이 남은 거 준다. 없으니까 이거라도 처먹어 하면서.. 이렇게 말하니까 엄청 불친절하고 험악할 것 같지만 그렇진 않다. 쓸데없이 친절하지 않을 뿐. 꽤 상냥하고 다정(?)하다.

 

 

 

맛있는 기내식은 아에로플로트의 큰 장점. 사진 보니까 또 먹고 싶군... 주로 피쉬나 치킨 중에 고르게 되는데 피쉬를 많이들 먹는 것 같다. 묻지 않고 그냥 주는 때도 있고.

 

항공 스케쥴도 좋은 편.  대기 시간이 수십 시간이 넘거나 출·도착 시간이 애매한 경우가 많은데 아에로플로트는 대기 시간이 대부분 다섯 시간 이내였고, 출·도착 시간도 너무 이르거나 늦지 않아 좋았다.

 

아에로플로트가 스카이팀의 일원이라는 것도 장점. 인천 공항에서 출국할 때 체크인은 대한항공 외주 항공사 카운터에서 하면 된다. 경우에 따라서는 코드쉐어로 대한항공을 탈 수도 있다. 마일리지 적립도 물론 되는데 좌석 클래스에 따라 적립률이 다르다. 나는 모스크바-유럽 구간만 70프로 적립되는 최하위 클래스였음. 움하하.

 

 

 

결론을 말하자면, 아에로플로트는 '가격 대비 썩 만족할 만한' 항공사였다. 아에로플로트가 지금의 가격 정책을 고수한다면 또 탈 의향이 있다. 내게도 불미스러운 일이 생길 지도 모르지만, 여행에서는 언제나 뜻하지 않은 일이 생기게 마련이니까.